문화살롱

주노 (Juno, 2007)

던즐도넛 2008. 3. 7. 23:43

 

 

 

좋아요, 미리 얘기해두지만 이 포스팅은 열렬한 예찬글이 될거 같습니다. <주노>는 근래에 제가 본 어떤 영화보다도 몰입해서 본 영화거든요. 9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를 보고 두시간을 꽉채워 본것같은 뿌듯한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주노>는 기본적으로 영화가 가져야 할, 제가 좋아해마지않는 많은 요소들- 배우진의 훌륭한 앙상블, 근사한 극본과 좋은 감독, 영화에 꼭 맞는 음악, 적은 제작비(25억)-를 갖췄고, 무엇보다 정말 재밌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친구말로는 2분마다 한번씩 관객들이 웃는다고 했는데 그게 과장이 아니었어요! 물론 몸으로 웃기는 코메디가 아니라 순전히 대사에 의존한 수많은 말장난과 은어, 비꼬기 유머라 아주 아쉽게도 번역을 거쳐서 봐야하는 우리는 한번 걸러진 유머로 볼 수 밖에 없긴 하지만요. 게다가 그번역이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는 수준이라 더 아쉬웠어요. 어느정도는 우리나라의 유머로 적절히 바꿨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실제로 짧은 리스닝 실력으로 듣는건데도 혼자 계속 웃어서 민망했거든요:-)

 


주노역의 엘렌 페이지와 아빠역의 J.K. 시몬스(스파이더맨의 편집장아저씨 기억나실려나?)

 

 

영화줄거리는 알려진데도 전형적인 10대영화의 구조를 가졌습니다. 책임감없는 16살짜리 애들이 거사를 치뤘고 시간은 흘러 자연의 법칙으로 애기가 생긴거죠. 그러나 디아블로 코디의 각본은 이 진부한 소재를 전혀 진부하지 않게 끌어갑니다. 졸지에 임산부가 된 주인공 주노의 애기를 낳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은 금방이고, 애기를 낳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줘버리자고 결론낸후 그에 대한 방법도 본인이 능동적으로 찾아내버렸으니까요. 기존의 10대영화에서 상영시간내내 할 얘기가 <주노>에선 초기에 다 지나가 버립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 마이클 세라, 제이슨 베이트먼, 앨리슨 제니, J.K. 시몬스, 디아블로 코디, 올리비아 썰비, 엘렌 페이지

 

 

그럼 대체 <주노>는 무슨 얘길 하느냐? <주노>는 캐릭터의 개성에 완전히 의존한 작품입니다. 남다른 개성을 가진 10대 소녀 주노역의 엘렌 페이지부터 자신의 전형적인 캐릭터-얼빵해보이지만 좋은 사람인-를 다시 한번 연기한 마이클 세라(애기 아부지역:-), 주노의 단짝친구이자 선생님 킬러 레아역의 올리비아 썰비,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 제니퍼가너, 제이슨 베이트먼, 주노의 유머감각은 유전임을 보여주는 아빠역의  J.K. 시몬스, 양엄마 앨리슨 제니, 이 모든 출연진이 생생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여러개의 인터뷰와 SNL에 출련한 엘렌 페이지를 보면 이 사람의 실제 캐릭터와 영화캐릭터가 상당히 겹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냉소적이고 빈정대는(sarcastic) 농담을 잘 하더라구요. 더 좋아졌어요.*_*

 

 

마이클과 엘렌이 감독인 Jason Reitman에 대해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동영상.

제이슨이 뭐 좋아하더라? "Today he was eating sweedish fish!" 하하하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한 훌륭한 각본얘기는 빠질 수 없겠죠, 스트리퍼 전력으로 더 유명한 디아블로 코디(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행자인 존 스튜어트는 스트리퍼에서 작가로 전향한 다아블로를 언급하며 임금삭감을 축하한다고 농담을 했었죠ㅋ)는 아카데미 극본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요. 웃기고 재밌는 수많은 대사 뿐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깃든, 참으로 맛깔나게 근사한 극본이었습니다.
이 막강한 두명의 매력녀들때문에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못받았지만 전작인 <땡큐 포 스모킹>부터 유머감각을 과시한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도 자신의 역할을 100% 다했죠. 

 

 

디아블로 코디와 엘렌 페이지가 뽑은 최고의 대사

 

디아블로가 뽑은 대사-"Wholesome, spiritually wealthy couple have found true love with each other." Aw... all that's missing is your bastard!
레아: (벼룩신문에서 입양을 원하는 가족사연을 읽으며) "건전하고 정신적으로 부유한 부부가 서로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 오... 모두 니 사생아한테 없는거네.


엘렌이 뽑은 대사-You should've gone to China, you know, 'cause I hear they give away babies like free iPods. You know, they pretty much just put them in those t-shirt guns and shoot them out at sporting events.
주노: (불임부부에게) 당신네들은 중국으로 가야되요, 있죠, 내가 듣기론 그들은 애기들을 공짜아이팟처럼 준데요. 그러니까 마치 스포츠 행사에서 애들을 티셔츠총(총처럼 생겨서 티셔츠를 넣고 쏘면 티셔츠가 멀리 날아감)에 넣고 쏘는 것 같은거죠.

 

 

 

 위에서 원래 배우가 가진 매력이 영화에 그대로 나왔다고 했는데 영화속에서도 자연인으로서도 엘렌 페이지(Ellen Page)는 정말 귀엽습니다. 영화속 주노처럼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유머감각에 완전히 반했어요.
 엘렌의 매력에 대한 또 다른 예로, 얼마전 21살이 된 이 어린 배우가 현재 남자친구가 없고 평소엔 청바지에 티셔츠, 후드를 즐겨입는 톰보이다 보니 최근에 게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어요, 근데 이친구가 지난주 Saturday Night Live에 나와 한 콩트에서 게이가 되는 중인(being gay) 캐릭터로 출연했습니다. 왜 그런거 있잖아요, 본인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남들이 보기엔 너무 게이스러운거(so gay). 실제로 게이든 아니든 정면으로 소문을 비웃어주는 이 근사한 자세에 전 한번 더 반했어요.

 

 

엘렌의 SNL 피터팬 꽁트. 아악 귀여워ㅋㅋ

 

 

안타깝게도 주노는 개봉2주도 안되서 모든 상영관에서 내렸습니다. 아카데미도 탔으니 괜찮겠다 싶어 느긋하게 있다가 마지막날밤 메가박스에서 겨우 봤어요. 이건 정말 화나는 일이에요. 미국에서도 7개 개봉관에서 개봉해서 관객들 입소문으로 점차 개봉관을 늘려나가서 1억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아카데미발도 있으니 좀 기다려 주면 좋으련만요. 그랬다면<원스>의 맥을 잇는 인디영화가 됐을텐데 아쉽네요 정말. 또 혼자서 엘렌 페이지 매력적이라고 떠들고 다니게 생겼군요.

 

 

 

- 사소한 몇가지 -

* 주노가 사용하는 햄버거전화기는 작가인 디아블로 코디 꺼라네요. 나이가 몇인데ㅋ
* 엘렌 페이지가 주노는 Kimya Dawson와 The Moldy Peaches 음악의 팬이여야 한다고 제안했답니다. 그래서 OST에 이들이 참여하게 됐다네요. 그렇습니다, 이사람은 음악에도 센스가 있어요.

* 제이슨 베이트먼과 마이클 세라는 저의 완소미드<
Arrested Development>에서 부자지간으로 출연했었죠. 영화속에서 둘이 만나는 장면은 없습니다.